부동산 이야기/부동산 소설

초보의 부동산 매수기 - (2) 성급한 결정

염소아빠 2020. 11. 20. 10:59

 

 

누구나 인생에 첫 부동산 매입을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첫 부동산을 매입하는 순간이 있었고, 시행착오라는 미명 하에 내지 않아도 될 많은 수업료와 기회비용을 날려야 했다. 이 글은 내가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느꼈던 것을 통해 다른 사람은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지난 화 읽기:

초보의 부동산 매수기 - (1) 첫 임장

 

 

(2) 고민의 시작

 

2채의 집, 그리고 그중 한 채는 평소에 그리도 가보고 싶었던 아파트. 첫 임장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부동산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사장님이 괜찮은 집이 있었냐고 물었다. 

 

"두 번째로 본 집이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이때 좀 더 신중하게 대답했어야 했다. 협상을 잘하는 원칙 중 하나가 속마음을 너무 일찍 드러내지 않는 것 아니었던가. 말을 꺼낸 순간 아차 했지만 괜찮다, 어차피 지금 당장 집을 계약하진 않을 테니까 라며 위로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내 대답을 듣더니 그렇죠, 정말 괜찮은 집이에요, 이 단지에 이만한 매물이 없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타워형이고, 코너에 거실이 있어서 남동향과 남서향에 커다란 창이 있고, 안방도 남동향, 나머지 방 두 개도 남서향, 향은 나쁘지 않았다. 최상층에서 두 층 아래라 옆 동에서 드리워지는 그림자 걱정도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의 호들갑도 이해는 됐다.

 

"얼마에 나온 물건이라고 하셨죠?"

 

계속해서 발랄하게 칭찬을 늘어놓던 사장님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하게 변했다. 이 집은 원래 10억 5천만 원에 나온 매물인데 집주인이 오늘 갑자기 10억 1천만 원으로 호가를 내렸다고 하면서, 매수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호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고 있던 터라 4천만 원이 할인되었다는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저희가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매물도 마음에 들고 가격도 나쁘지 않지만, 물건을 보자마자 결정하는 건 그 누가 보기에도 성급한 것이었다. 그리고 와이프와도 의견을 나눠야 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그러라고 하면서 이건 정말 좋은 기회라고 한 번 더 덧붙였다.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와이프도 그 집을 너무나 좋게 봤던 것 같다. 와이프가 그 집을 지금 잡지 않으면 나중엔 절대 못 살 것 같다고 말하며, 전셋집 구하러 돌아다니던 1년 전 경험을 이야기했다. 정말 좋아 보이던 전셋집이 있었는데 하루 정도 결정을 미룬 탓에 다른 사람에게 뺏겼었다고. 

 

"그래도 10억 1천만 원은 너무 비싸."

 

내가 생각하던 예산은 그보다 1억 원 낮은 9억 원대였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9억 후반을 넘어가는 것은 위험했다. 

 

"3천만 원 더 깎아달라고 하고, 만약 깎아주면 계약하겠다고 부동산에 이야기하자."

 

나는 당연히 3천만 원은 더 깎아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부동산에서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집주인을 본인이 잘 설득해서 9억 8천만 원에 계약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3천만 원을 깎아주면 집을 계약하겠다고 말해놨으니 이제 정말 매매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패닉. 단 2채의 집을 둘러보고 계약을 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또 패닉. 이렇게 큰돈 쓰는 것을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가.

또또 패닉. 우리가 그 집을 자세히 뜯어보지도 않았는데, 혹시 우리가 미리 생각하지 못한 하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저녁 6시까지 부동산에 답을 주겠다던 나와 와이프는 일요일 하루 내내 고민과 후회를 번갈아 가며 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모색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민망하지만, 체면 구기는 것을 무릅쓰고 이 계약 건이 없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누가 단 2채만 둘러보고 10억 원가량 되는 계약을 할 수 있을까.

 

"사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가 너무 성급한 것 같아서요.."

 

하지만 부동산 사장님은 끈질겼다. 통화를 끊지 않고, 나를 1시간가량 붙잡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웃긴 게, 부동산 사장님의 말을 계속 들으니 이 집을 계약하기로 했던 우리의 첫 결정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집을 언제 또 이 가격에 살까.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통화를 하다가 9시까지 다시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하며 통화를 끊었다.

 

다시 와이프와 고민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우리가 매수하고자 했던 아파트 주인이 거실 뷰 사진을 찍어서 보낸 것을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다. 덕분에 10분 만에 빠르게 훑어보고 왔던 집을 다시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다시금 그 집에서 평화롭게 사는 미래의 나와 와이프, 그리고 아직은 없지만, 미래의 아이들 모습이 상상됐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훈육하는 우리의 모습. 상상 속 우리와 그 집은 너무나 잘 어울렸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 부동산 사장님의 끈기와 절묘한 타이밍에서의 사진 한 장이 나와 와이프를 움직인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핸드폰 화면에서 무언가를 로딩하는 듯, 빙글빙글 원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원이 갑자기 사라지고 알림이 떴다.

 

 

"3천만 원 입금이 완료되었습니다."

 

 

- 3화에서 계속됩니다.